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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동아미디어그룹의 지나온 발자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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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03.21 제 1회 동아마라톤 대회

본보는 1931년 제1회 동아마라톤대회 이래 74년간 이 대회를
개최해 오며 손기정 황영조 이봉주 등으로 이어지는 ‘마라톤
한국’의 토양을 마련했다. 손 선수는 양정고보 시절 2회 대회
때 준우승하고 3회 대회 때 우승했다.
이 밖에도 1923년 7월 여자정구대회, 1924년 10월
학생웅변대회, 1925년 동아신춘문예, 1926년 8월 4구락부(배재,
중앙, 휘문, 경신) 야구연맹전, 1929년 9월 수영경기대회 및
남녀학생작품전람회 등 각종 연례 스포츠와 교육문화 행사를
주최했다.
특히 1923년에는 조선물산장려운동(조선사람 조선 것
쓰기운동), 1931년 브나로드 운동(문맹퇴치운동) 등 대대적인
민족주의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이후에는 1947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쟁패전, 1956년 바둑 국수전, 1961년
동아음악콩쿠르, 1962년 명창명인대회, 1964년 동아연극대회,
1985년 동아국악콩쿠르 등을 마련해 다양한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

1936 (1936.08.29~1937.06.02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무기 정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로 당시 대망의 2시간 30분 벽을 깨고
우승한 손기정 선수는 전세계에 한국인의 기상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본보에도 큰 파장을
불러왔다. 손 선수가 시상대에 서 있는 장면 사진을 1936년 8월 25일자에 게재하면서 가슴
부분의 일장기를 지워버려 총독부로부터 네 번째 무기정간 조치를 당했다.
이는 당시 이길용 체육부 기자와 이상범 화백의 ‘이심전심’이 이뤄낸 작품이었다. 이 사건으로
본보 기자 8명이 구속되고 이중 5명은 끝내 신문계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주필 편집국장 등도
사임했다. 정간은 1936년 8월 29일부터 1937년 5월 31일까지 9개월간 지속되고 그 사이
송진우 사장, 장덕수 부사장, 양원모 사장직무대리 등도 잇따라 물러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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